점심시간 빌딩가를 걸으며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일 내일도 일, 일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팀 미스틱 소속 포켓몬 트레이너로 열심히 활동했던 것도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배틀조차 안 한지 오래되었다.
대형 전광판 광고에서 포켓몬이 나오자 남자는 조금 그리워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할 틈도 없이, 화면은 곧바로 다음 광고로 넘어갔다.
이 거리는 조급하다.높은 빌딩이 하늘을 가리고, 한낮에도 네온이 비쳐 밤낮이 없어진 것만 같다.
남자가 사무실로 돌아가려하는 순간 한기가 느껴졌다. 기온이 낮은 것은 아니었다.
‘대체 얼마나 피곤한 걸까?’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 사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뭐야…"
"내려온다!"
남자는 들려오는 목소리로부터 무엇인가 나타난 것을 짐작했다.
그리고는 소란보다는 외침에 가까운 그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고 남자는 천천히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아아, 오늘 이렇게 하늘이 맑았구나’
한가로운 감상이 순간 스쳐 지나간 뒤 비로소 깨달했다.
그가 느낀 것은 한기가 아니라 극도의 위압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늘에서 나타난 것은 뮤츠였다.
뮤츠의 소문을 들은 적은 있었다. 극한까지 전투력을 높인 포켓몬.
실제로 보니 강자를 찾는 순수함마저 느껴졌다.
그 날카로운 눈빛은 군중 속에서 자신과 승부할 만한 트레이너가 있는지 찾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출현한 진기한 포켓몬에 당황한 사람들도 있었고, 오히려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자도 기록에 남기려 했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지가 않았다.
가만히 서서 위엄에 압도당할 뿐이었다.
강함을 앞에 두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자신이 분했다.
하지만, 기분은 결코 불쾌하지 않았다.오히려 오랫동안 원해왔던 것이었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한순간의 시선도 놓치지 않고 서있는 남자를 뮤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남자는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는…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남자는 눈빛으로 뮤츠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뮤츠는 날카롭게 노려볼 뿐이다.
‘다시 한번 강해져서 제대로 너에게 도전하고 싶어.
진심으로 승부하고 싶다는 기분을 잠시 잊고 지냈지만, 너를 만나 다시 생각났어. 그러니까…’
몸은 움츠러들고 움직이지 못했지만 마음은 무모할 정도로 벅차올랐다.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뮤츠에게 이 호소가 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확실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윌로우 박사님이나 팀 리더 블랑쉬 밑에서 녹초가 될 때까지 돌아다니며 조사한 그날들, 그리고 포켓몬에 열중하고 있던 그 무렵의 그때를.
잠시의 대치 이후, 뮤츠는 이 안에 자신과 싸울 수 있는 자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초음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볼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말고는 뮤츠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대형 전광판의 광고처럼 거리는 다시 부산하게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남자의 가슴속 뜨거움은 여전했다.
‘한 번 더 포켓몬 배틀이 하고 싶다. 그리고 강해지고 싶다. 뮤츠는 강함을 찾아 다시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때는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포켓몬 트레이너로 있고 싶다.’
남자는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높은 빌딩 사이라 할지라도 올려다보면 분명히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그 강하고 도도한 포켓몬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거리에 삼켜지지 않고,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아스팔트 바닥을 딛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